내가 프리미엄 코칭을 시작한 이유

배우자
2024-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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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촬영하고 바로 내려왔다. 다음 날 출근이라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스타일리스트님께서 하신 말이 귀에 맴돌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사실이었다. 그날 촬영을 하고 사진 받고 다음날 퇴근 후에 집에 와서 어제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혹시나도 잃어버릴까 봐 두려웠다. 적고 번화가에 나왔다. 접근 가능할 줄 알았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말 걸기가 두려웠다. 요즘 들어서 뉴스에 많이 나오지 않는 가? 여성이 스토킹 당했다느니 기타 등등 사실 난 타고난 내향적인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항상 외향적인 사람들을 동경했다.


  내가 얼마나 심하냐면 마트에서 물건 찾을 때 종업원한테 물어보면 1분도 안 걸리는 걸 그걸 못 물어봐서 30분 넘게 찾아 헤맨 적도 있었고, 식당에 가면 여기요, 사장님 그 말을 못 해 한참을 기다린 적이 많았다. 상대방과 눈을 보고 대화하는 건 최근에 고쳐지긴 했지만 상대방과 눈을 맞추기가 힘들어 땅을 보고 다녔던 적도 있었다. 번화가에 나가면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 싫어서 최대한 사람들이 없는 쪽으로 피해 다니기도 했다. 이런 내가 너무 싫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말도 잘하고 싶고 구부정한 자세가 아닌 바른 자세로 당당하게 걷고 싶었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너무 어려웠다.




"어떻게 하면 되죠?", "어떻게 하면 내가 바뀔 수 있나요?"



 내게 가르쳐 주는 사람들은 없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살았으니까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 같았다.


 버스 정류장에서 시간이 남아 가까이에 있는 서점으로 갔는데 자기 개발서를 발견했다. 이런 장르의 책이 있는 지도 몰랐다. 이 장르에 홀렸다 고해야 할까? 마치 아르키메데스가 밀도를 발견하면서 유래카를 외쳤던 이유를 갈 것 같았다. 충동적으로 5권을 구매했고 하루 만에 다 읽었다. 여기서 하는 공통적인 이야기가 있었다.




"행동"



읽고 의심부터 하기 시작했다. 온 갓 안되는 이유와 핑계를 늘어놓았다. 5권 하는 말이 다 똑같으니까 먼가 새로운 것이 필요했다. 쉽고 지금 상황에 나한테 맞는 글은 없을까? 그때 책을 구매하고 대여한 비용만 해도 자그마치 100만 원 넘을 것이다. 읽으면서



"이건 틀렸어"


"아건 내가 찾던 게 아니야"


"이번 책은 좀 다르겠지"


"역시 똑같잖아"




 무한 반복의 루프에서 정신을 차려보니 자기개발서 장르 중독자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읽지 않았으면 난 아직도 그냥 병신 개찐따였을것 같다. 돌이켜 보면 이거라도 읽어서 다행이었다. 글의 짜임새와 구조를 알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 같다.


 돌고 돌아서 자기개발서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말 '행동' 그것을 해보려고 했다.


 첫 번째로 다이어트를 하기로 했다. 키 168에 몸무게 82kg 그양 돼지였다. 중학교 마른 편이었는데 태권도를 해서 몸이 유지가 되었지만, 고등학교 때는 집, 학교뿐이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대학교에 가서도 집, 학교였다. 야동 보면서 딸딸이 치는 게 내 인상의 낙이었다. 누가 봐도 찐따 냄새가 풍기는 사람이었다. 그때가 21살이었다. 그때 산업기능요원으로 회사를 다녔었는데 훈련소 가기 전까지 반드시 성공하려고 했다. 운동, 식단 이 악물고 했던 것 같다.


저울 위에 올라가는데 60kg를 찍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와 나도 되구나"



 그 뒤로 60 유지하려고 식단만 조절하고 있다.



 22살 회사에서 훈련소를 갔다 오라고 해서 노예처럼 일만 하던 생활을 잠깐 중단하고 4주 동안 육군 훈련소에서 훈련병으로 있었다. 처음 보는 낯선 환경 처음 보는 사람들... 그리고 신선한 문화충격을 받았다. 그건 바로 이성이었다. 나는 이성에 대하여 무 경험자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 빼고 먼가 다들 섹스 라이프를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젊음을 즐긴다고 해야 할까? 그들은 나의 입장에서 너무 개방적이었고 말은 굉장히 없어 보이면서도 또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다. 야동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을 본인들은 하고 있는 거니까 먼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같았다. "여자 어떻게 만나는데?"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좀 물어보는 시간이었다. 나한테 훈련소는 그랬던 것 같다.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고 4주간 함께했던 훈련했던 사람들과 단독방을 만들어 "연락하고 지내자", "이 추억 잊지 말자" 하는 말과 함께 그들은 정확히 1주일 정도 대화하다가 각자의 길로 걸어갔다.


 훈련받고 와서 많이 변했던 것 같다. 없던 이성에게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는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아직도 동네에 남아 있는 중학교 친구들과 연락하며 지내는 편이다. 그중에서 여자 좀 잘 만나고 다니는 친구를 한 날 찾아갔다. 이 친구가 그나마 내가 아는 친구들 중에서 여자를 만나고 다니지만 헤어지고 나면 소개팅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린다. 여자 만나고 싶다고 하니까 소개팅을 시켜 준다고 했다. 난 거절했다.




 "만남을 위한 만남은 하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친구가 말했다.




"정신병이다. 정신병원에 가야한다. 왜 나를 찾아 왔냐?" 




 이런 뉘앙스로 말했다.


 또 그냥 그렇게 살았다.


 20대 중반 25살 내 친구들은 괜찮은 직장에 다닌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말하면 다 알아주는 기업에 다닌다. 하지만 여자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만난 적이 있어야 이야기를 하지... 그렇다. 모솔이다. 안 해봤는지는 모르겠는데 확실한 건 모솔이다. 나도 금단의 시간 산업기능요원이 끝나고 지방의 작은 공기업으로 이직했다.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남자'랑 놀고 있었다. 친구랑 둘이서 김해 테마파크에 갔는데 우리 빼고 거의 다 커플이었다. 아니면 가족 단위로 왔던가... 현타 왔다. 눈물이 차올랐다. 친구는 해맑게 웃었다. 흐르려고 하는 눈물을 참으며 화장실로 뛰어갔다. 



'내가 지금 머 하고 있는 거지?'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온통 머리속으로는 여자로 가득 찼다. 그래서 어떤 생각을 했냐면 


'20대에 여자 겁나 많이... 질릴 정도로 만나고 이성에 대한 불안에서부터 해방되어 자유가 되면 그 것을 바탕으로 30대부터는 나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투자해야겠다.'


라고 마음먹었다. '길에서 번호를 물어보는 방법도 있구나' 이거다. 하면서 관련 내용을 찾아봤다. 혼자 하긴 좀 그래서 "친구들한테 같이 하자" 했다. 내 친구들은 부정만 했다. 혼자는 좀 그래서 픽업 유사 업체에 가입해서 거금을 들려 강의도 보았고, 픽업, 연애 업체 속에서 계속 헤매었던 것 같다. 강의만 들었지 행동하지 않았다.


 이것도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냥 가보세요. 처음은 떨리는데 하다 보니까 괜찮아져요."


'아 이게 방법인가?', '이게 핵심인가?' 업체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니까 이게 맞구나 하면서 자위했다. 하지만 다이어트 보다 실전 대입이 너무 어려웠다.


 또 아까운 시간만 날렸다. 시간은 흘러 2022년이 되었다. 다른 타 업체에서 단품으로 같이 로드해 주는 상품을 보았다. 구매하고 수강을 받으러 기대에 부풀어 있는 상태에서 서울로 올라갔다. 근데 진짜 별로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별로였다.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저 사람한테 가서 말 걸어 보세요." 계속 말 걸어라고 밀어 주었다. 말은 걸었지만 외웠던 멘트들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서울까지 와서 이 지랄하니까 진짜 현타가 왔다. 4시간 4시간 왕복 8시간 그 시간이면 누워서 딸딸이나 치는 게 더 좋았다고 생각했다.


"다 필요 없다."


 알고리즘으로 올라오는 연애랑 관련된 영상을 지웠다. 관심 없음 관심 없음 그렇게 누르다가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올라온 한 줄기 빛  덕선생이 눈에 들어왔다. 40대에 20대 어린 여자들을 만나고 다닌다고 하셨다. 처음은 그냥 호기심이었다. '이 사람도 이상한 지랄하는 사람 아닌가?' 생각했다. 그렇게 카페에 가입하고 '전화 상담 무료로 해주네?' 본전이니까 받아봤다. 근데 그런 생각 한 내가 너무 미안했다. 너무 친절하시고 진심으로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한테 본인의 시간을 무료로 써주실 수 있는 거지?' 통화하면서 내용도 너무 좋았고 다 가르쳐 줄게 다 물어봐라라고 하는 듯한 느낌으로 통화했다. 이분 한번 만나 뵙고 싶다. 만나고 싶다. 생각했다. "같이 로드 해주는 강의 없나?" 물어봤다. 있다고 하셨고 바로 입금했다.


 불안한 마음, 즐거운 마음 뒤로하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서울행 버스에 다시 한번 몸을 실었다. 덕 선생님은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고, 즐거움을 강조하셨다. 말은 쉽지 사실 겁나 어려운 부분이다. 실전에서 대입하는 게 말도 안 되게 어렵다. 덕 선생님이랑 함께 뛰면서 접근의 즐거움을 완벽하게 체화되진 못했지만 알 거는 같았다. 덕 선생님은 정말 그 행동을 즐기고 있었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그 즐거움이 다른 사람에게 전파가 되는 정도의 수준이다. 이 카페에 덕 선생님이랑 함께 로드 해보신 분들이라면 나뿐만 아니라 분명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로드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왔다. 감각을 유지시키려고 꾸준히 번화가에 나가서 접근을 했다. 처음에는 너무 이쁘시다. 번호 좀 달라고 이 멘트만 계속했는데 하다 보니 진짜 거짓말처럼 말이 늘기 시작했다. 이런 말도 하고 저런 말도 하고 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나중에는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즉흥적으로 대화를 했던 것 같다.


딱 1주일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생각보다 번호는 좀 받았는데 폰 게임에서 다 죽어 버렸다.


'안되는 거다' 


하면서 자위했다. 이렇게 다시 한번 잊고 살았다.


 그렇게 살다가 예정에 없던 인사이동을 하게 되었다. 장례 업종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이곳에 근무하면서 많은 것들을 느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랑 또래가 같거나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많이 죽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냥 좀 복잡했다.


 '한 번만 더 하자' 


 '이젠 진짜 여자 만나자'


 인생 프사 제작소 하고 다시 내려와서 일주일 동안 생각했고, 난 그냥 좁밥이다. 도움받아야 한다. 고 생각헀다. 또 고민했던 포인트가 머냐면 타 업체가 하는 광고에 홀릴 뻔했다. 다른 업체도 코칭 프로그램을 많이 한다. 4주 코칭 프로그램 하려고 했다. 가격도 올림포스보다 더 저렴했다. 알고 보니 재수강이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돈을 지불하고 끝나면 다시 수강 받고 싶으면 다시 돈을 지불하는 그런 구조였다. 솔직히 속을 뻔했다. 아마 덕선생님을 영접하지 않았다면 거기서 뻘짓 하고 있었을 게 분명하다. 솔직히 마케팅에 속아서 고민 좀 하다가 정신 차리고 덕 선생님께 다시 전화 상담을 받았다. 덕선생님은 한 번 더 반갑게 상담해 주었다. 


'부모님 빼고 내 인생에 이렇게 진심으로 걱정해 주시는 분이 있었을까?'


얼었던 나의 마음이 녹아내렸다.


그렇게 올림포스 프리미엄 수강생이 되었다.


결론 : 남은 20대는 덕선생님께 충성하고 30대부터는 여자 만나는 것보다 인생에서 더 가치 있는 일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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